거짓 선동 정치 괴벨스 연설 중 괴벨스 명언 모음 마케팅 기법

요제프 괴벨스(Joseph Goebbels)는 나치 독일의 주요 인물로, 선전 장관으로 활동하며 히틀러의 친위 세력 중 한 명이었습니다. 그의 거짓 선동 정치는 괴벨스 연설 중 수많은 괴벨스 명언 모음을 탄생 시켰고, 놀랍게도 그의 선전 전략들은 현 시대 중요한 마케팅 기법으로 활용되는 것도 많습니다. 그의 생애, 장애, 명언, 그리고 열등감과 관련된 시각을 연도별로 정리하고, 그의 아들에 대해서도 살펴보겠습니다.


요제프 괴벨스(Joseph Goebbels)

괴벨스 생애 (연도별 주요 사건)

  • 1897년 10월 29일: 독일 라이트 출생
  • 1921년: 하이델베르크 대학교에서 문학 박사 학위 취득
  • 1924년: 나치당에 가입
  • 1926년: 베를린에서 나치당 지역 지도자가 됨
  • 1933년 3월 13일: 선전 장관에 임명됨
  • 1945년 4월 30일: 히틀러 자살 후 잠시 독일 제국 총리 역임
  • 1945년 5월 1일: 베를린에서 아내와 함께 자녀들을 독살 후 자살

그의 생애와 행적은 나치 독일의 어두운 면모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그의 활동과 영향력은 오늘날까지도 역사적 연구와 토론의 중요한 주제입니다.

괴벨스 열등감 가치관 형성

그는 네 살 무렵 골수염에 걸려 오른쪽 발이 굽었고 평생 보행용 의족을 끼고 절름발이로 지냈습니다. 이로 인해 그는 신체적으로 열등감을 느꼈고, 이는 그의 성격과 정치 활동에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 받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근면 성실함 하나로 사무원과 경리를 거쳐 공장 지배인까지 승진한 ‘프티부르주아’로 전형적인 독일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처지에서 부자와 권력자에 대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은 이후 사회주의에 대한 동경과 함께 비뚫어진 세계관을 갖게 되는데 중요한 모티브가 됩니다.

굽어진 다리 때문에 놀림을 받으며 그는 자기 자신을 열등한 사람으로 생각하며 좌절감에 자신의 운명을 저주하고 나아가서 인간 자체를 증오하게 되었고 그 대상을 유대인으로 설정했습니다.

상당히 좋은 머리를 갖고 태어난 그는 열등감을 극복하기 열심히 공부를 하였고, 가난하지만 아낌없는 부모의 지원으로 인문계 김나지움을 졸업하고 독일어 작문 시험에서 최고 점수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도 사랑했던 연인과 헤어지게 되었는데 이 헤어짐 조차도 자신의 열등적인 모습과 가난한 자신의 집안의 문제로 판단하고 더욱 사회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키워 나갑니다.

괴벨스 열등감


그는 1921년 11월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낭만주의 극작가 빌헬름 쉬츠에 대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그가 젊은 시절 삶의 목표로 삼고 살아온 박사만 되면 탄탄대로가 열릴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패전 후의 극심한 정치, 경제적 혼란 속에서 박사 학위도 쓸모가 없었고, 여전히 가난하고 괴로운 삶을 살게 됩니다.

​그는 이때 이 모든 것이 독일인의 문화와 정신까지 지배하고 있는 유대인들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괴벨스 명언 모음

그는 선전의 대가로 여러 명언을 남겼습니다. 워낙 연설도 많이 하고 말로써 흥한 사람이기에 우리나라 조만대장경이라는 우숫개 소리처럼 그도 수많은 말을 남겼습니다.

  • “거짓말도 충분히 자주 반복하면 진실이 된다.”
  • “대중은 작은 거짓말보다 큰 거짓말에 더 쉽게 속는다.”
  • “선전의 목적은 지적으로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의 감정을 움직이는 것이다.”
  • “선전은 사실과 감정의 혼합물이어야 한다.”
  • “우리가 침략자로 보이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 “전쟁을 이기기 위해서는 군대뿐만 아니라 민중도 하나로 단결해야 한다.”
  • “물고기가 물을 필요로 하는 것처럼 베를린은 센세이션을 필요로 한다. 이 도시는 센세이션을 먹고 산다. 그리고 이를 소홀히 하는 정치 선전은 모두 수포로 돌아갈 것이다.”
  • “거리를 정복할 수 있다면 대중을 정복할 수 있다. 그리고 대중을 정복하는 자는 국가를 정복한다.”
  • “선동은 문장 한 줄로 가능하지만 그것을 반박하려면 수십 장의 문서와 증거가 필요하다.”
  • “적에 맞서려면 무엇보다 대중들의 한없는 증오를 활용해야 한다”
  • “나에게 한 문장만 달라 그러면 누구든지 범죄자로 만들 수 있다.”
  • “선전은 목표를 가지고 있어야 하며,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을 촉구해야 한다.”
  • “적을 분열시키기 위해서는 그들 사이에 불신을 심어야 한다.”
  • “자유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쟁취하는 것이다.”
  • “민족의 미래는 그 민족의 의지와 능력에 달려 있다.”

어록 내용을 찬찬히 살펴 보면 지금 우리의 정치에 활용되는 여러가지 모습들이 오버랩이 됩니다. 우리 정치인들은 토론할 때마다 서로에게 거짓 선동을 한다고 싸웁니다. 실례롤 지나온 과거 역사에 훗날 보니 거짓말이었던 선거용 거짓말은 무수히 많습니다.

괴벨스 선전 방법


감성, 감정 정치를 하는 것도 똑같습니다. 또 ‘거리를 정복할 수 있다면 대중을 정복할 수 있다.’는 말에는 우리의 촛불 집회도 떠오릅니다. 나치당이 힘을 얻고 세력을 키우게 된 가장 큰 계기는 벨스라는 청년의 죽음을 이용한 선동이었습니다.

괴벨스 연설 모음


1933년 3월 25일, 베를린 스포츠팔라스트 연설
연설의 요지는 나치 정권의 목표와 정책을 설명하며, 대중의 지지를 호소하고 나치당이 독일을 구원할 유일한 정당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 연설에서 그는 ‘아시아의 약탈민에 맞서는 총력전(Totaler Krieg)’이 필요하다는 연설을 했습니다. 제대로 실력을 발휘한 그의 연설에 군중은 열광적으로 달아올랐고, 러시아 야만인들의 볼셰비즘 체제에 맞서 유럽 문명을 지켜야 하며, 그러기 위해 희생이 필요하다는 연설로 독일 군중을 분기시켰습니다.

소현세자 독살

우리의 아픈 역사

괴벨스의 선동과 스스로의 의심으로 아들을 죽인 아버지의 행동. 누가 더 역사에 짐을 지었을까?
병자호란 당시 정말 인조는 소현세자 독살을 지시했을까요?

1939년 9월 1일, 독일의 폴란드 침공 연설
폴란드 침공 직후, 그는 대중에게 독일의 군사 행동을 정당화하고, 독일 민족의 단결을 촉구하는 연설을 했습니다. 이 연설은 전쟁을 지지하는 대중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1943년 2월 18일, 총력전 연설 (베를린 스포츠팔라스트 연설)
가장 유명한 연설 중 하나로, 괴벨스는 독일 국민에게 총력전을 호소하며,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모든 자원을 동원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이 연설은 “토탈레 크리그” (Total War) 연설로도 알려져 있으며, 괴벨스의 선전 기술이 극대화된 순간이었습니다.

베를린 스포츠팔라스트 연설
베를린 스포츠팔라스트 연설

괴벨스 선전 방법을 활용한 현대 마케팅

그의 선동적이고 열정적인 연설과 명언들을 통해 나치 이데올로기를 퍼뜨리고, 대중을 나치 독일의 목표에 동원하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의 선전 전략은 오늘날까지도 정치적 커뮤니케이션과 대중 조작의 사례로 연구되고 있습니다.

먼저 그가 활용한 방법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대중 매체 활용 (언론 통제)
    라디오, 영화, 신문 등 대중 매체를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나치 이념을 확산 시켰습니다.
    라디오 : 보급형 저렴한 라디오 수신기까지 보급하여 모든 가정에서 나치의 메시지를 들을 수 있게 했습니다.영화 : 나치 이데올로기를 담은 선전 영화 제작. 예를 들어, 레니 리펜슈탈의 “의지의 승리”는 히틀러와 나치당을 찬양하는 내용의 영화를 끊임없이 만들어 상영합니다.
  2. 대규모 집회와 퍼레이드
    그는 나치당의 대규모 집회와 퍼레이드를 통해 히틀러를 대중에게 신성한 지도자로 각인 시켰습니다. 이 이벤트들은 종교적인 분위기와 함께 히틀러를 구세주로 묘사하는 무대로 만들었고 성공적이었습니다.

    뉘른베르크(Nuremberg rallies) 집회가 바로 그 예입니다.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참여한 대규모 집회로, 히틀러의 연설과 나치의 힘을 과시하는 퍼레이드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3. 선전 포스터와 슬로건
    나치는 곳곳에 히틀러를 찬양하는 포스터를 붙이고, 강렬한 슬로건을 사용하여 대중의 감정을 자극했습니다.
    예를 들어 침략 한달전 부터 다른 설명 없는 “공격” 이라는 단어만 들어가 있는 포스터를 대대적으로 게시합니다. 그러다가 시간이 임박해 오면 “공격”이라는 단어 밑에 “날짜를 기입” 합니다.
    이미 군중들은 공격을 해야 하고, 시간을 부여 받은 임무자가 되어 있습니다.

    대표적 슬로건: “Ein Volk, ein Reich, ein Führer” (한 민족, 한 제국, 한 지도자)
  4. 교육 시스템 통제
    괴벨스는 교육을 통해 젊은 세대에게 나치 이념을 주입했습니다. 학교 교과서는 나치의 인종 이론과 히틀러를 신격화하는 내용으로 채워졌습니다.

    대표적 교육으로 히틀러 유겐트가 있습니다. 청소년 조직인 히틀러 유겐트를 통해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나치 이념을 교육했습니다​
  5. 사교 활동과 문화 행사
    그는 각종 사교 활동과 문화 행사를 통해 나치 이념을 확산 시키고, 히틀러의 이미지를 강화했습니다. 이러한 행사는 종교적이고 신화적인 분위기를 띠며 히틀러를 찬양했습니다.

    나치 기념일이 바로 그런 행사 입니다. 히틀러의 생일 등 중요한 기념일에 대규모 행사를 개최하여 그의 신성성을 강조했습니다​. 지금 북한의 모습과 똑같습니다.

현대 마케팅 기법에 활용

괴벨스의 나치, 히틀러의 선전 광고의 수많은 기법은 “최초”라고 기록된 것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1935년 세계 최초로 정기적인 TV방송 시작​, 세계 최초로 32개 국가에 송출되는 베를린 올림픽 개최 등이 대표적입니다. 꼭 그를 오마쥬했다고 보기는 힘들지만, 현재와 비교해 보면 그 옛날의 그의 방식을 잇는 광고 형태가 다수 있습니다.

브랜드 신격화 : 애플과 같은 기업은 제품 발표 이벤트를 통해 제품과 브랜드를 거의 종교적 수준으로 신성화 합니다. 스티브 잡스의 프레젠테이션은 일종의 예배와도 같이 구성하고 꾸밉니다.

소셜 미디어와 바이럴 마케팅 : 괴벨스가 라디오와 영화를 활용했던 것처럼, 현대 마케팅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메시지를 널리 퍼뜨립니다. 바이럴 마케팅을 통해 브랜드와 제품을 대중에게 각인 시킵니다.

광고 캠페인과 슬로건 : 강렬한 슬로건과 비주얼을 사용하여 소비자의 감정을 자극하고, 제품에 대한 충성도를 높입니다. 예를 들어, 나이키의 “Just Do It” 캠페인은 브랜드에 대한 강력한 이미지를 구축합니다.

교육과 트레이닝 : 기업들은 직원 교육을 통해 기업 문화를 인지 시키고, 이를 통해 직원들이 브랜드 이념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합니다.

문화 이벤트와 스폰서십 : 브랜드는 스포츠 이벤트나 음악 페스티벌 같은 대규모 문화 행사를 스폰서하여 대중과의 관계를 강화하고 브랜드의 이미지를 높입니다.


이러한 기법들은 모두 대중의 심리를 이용하여 특정 이념이나 브랜드 이미지를 강화하는 데 효과적인 주요 포인트들 입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괴벨스를 카피한 것은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스스로 계획하고 실천한 그 시대의 성공이 지금의 마케팅 기법과 궤를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은 생각해 볼 지점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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